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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감정은 '나'일까?

감정에 휘둘리는 현대인, 답은 고대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감정을 나 자신으로 착각하곤 한다. 화가 나면 내가 화가 났다”라고 말하고, 슬플 때는 나는 슬퍼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감정은 진정한 나일까?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의 자극은 실제 의 일부일까, 아니면 바깥에서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할까?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은 이 질문에 대해 성찰해 왔다.


불교와 스토아철학, 두 사상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지만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두 철학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 글은 감정과 자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하여,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실질적인 기술들을 불교와 스토아학파의 관점에서 소개한다. 감정이 나를 잠식하는 시대에, 고대의 지혜는 오히려 더 새롭고 강력한 해법이 될 수 있다.

감정은 '나'일까?

 

1. 불교: 감정은 지나가는 구름일 뿐

불교에서는 감정을 무상한 것으로 본다. 감정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흐름일 뿐, 본래의 나와는 무관하다.
라고 느끼는 자아조차도 다섯 가지 요소인 오온(五蘊)의 집합으로 설명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 즉 감각과 감정이다. 부처는 감정에 붙잡혀 괴로움을 증식시키는 대신, 감정을 관찰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감정을 관찰하는 방법: 위빠사나(Vipassana)

위빠사나는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명상 기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것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난다”라고 판단하는 대신, 단지 뜨거운 느낌혹은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으로만 인식하는 것이다. 이로써 감정은 자아와 분리되며, ‘는 그 감정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관찰자가 된다.

 

 

2. 스토아학파: 감정은 판단이다

스토아철학은 감정을 단순한 생리 반응이 아니라 판단으로 본다. , 어떤 사건이 나에게 유익하거나 해롭다고 판단할 때 감정이 발생한다. 에픽테토스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치료(CBT)와도 연결되는 개념이다.

 

감정과 판단 사이의 틈 만들기: 인식의 연습

스토아학파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 이렇게 묻는다.

  • 이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인가?”
  • 지금 내가 내린 판단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가?”
  • 이 반응이 나의 이상적 삶에 도움이 되는가?”

이러한 내면의 대화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인식으로 재구성한다.

 

 

3.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는 실천 기술

불교와 스토아학파는 공통적으로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관찰하는 태도를 강조한다. 이것은 감정을 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 나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자아를 감정으로부터 분리하는 연습이다.

 

감정 일기 쓰기

  • 매일 감정이 들끓었던 순간을 기록하되, ‘나는 화났다가 아니라 화라는 감정이 발생했다로 표현한다. 주어를 감정에 두는 방식은 감정을 내면화하지 않는 데 효과적이다.

 

아침 명상 또는 저녁 사색

  •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감정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진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매일 밤 스스로를 돌아보며 감정에 휘둘린 순간을 반성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격 늘리기

  • 불교에서는 호흡, 스토아에서는 인식을 이용해 반응 전에 멈추는 훈련을 한다. 이를 통해 반사적 반응 대신, 선택적 행동이 가능해진다.

 

 

4. 현대 심리학: 감정을 바라보는 훈련, 마음 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

현대 심리학은 감정에 대한 고대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체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중에서도 마음 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는 감정에 거리두기를 적용한 가장 정교한 심리적 도구로 평가받고 있다.

MBCT는 우울증의 재발 방지 치료법으로 개발되었으나, 지금은 스트레스, 불안, 감정기복 등 다양한 문제에 활용되고 있다. 이 기법은 불교의 위빠사나 명상과 인지치료(CBT)를 통합한 형태로, 감정을 억제하거나 분석하기보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연습에 집중한다.

 

감정을 바꾸려 하지 말고 바라보라

MBCT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비판단적 인식이다. , 감정이 들었을 때 이 감정은 나쁜 감정이야’, ‘이 감정을 없애야 해와 같은 생각을 중지하고, 감정을 평가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 훈련은 뇌의 전두엽(이성)과 변연계(감정) 사이의 연결을 강화해,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 3분 감정 스캔

MBCT에서는 하루 1~2 3분 정도 시간을 내어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신체 감각과 함께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1.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인식한다. : ‘긴장감’, ‘불안함’, ‘초조함
  2. 감정이 느껴지는 신체 부위를 관찰한다. : 가슴의 조임, 어깨의 뻣뻣함
  3. 그 감정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둔다. : ‘이 느낌이 존재하고 있다라고만 인식

이 방식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바꾸는 대신, 감정을 안전하게 통과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감정과 자신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훈련인 셈이다.

 

 

감정과 나 사이에 공간을 만들자

불교, 스토아학파, 그리고 현대 심리학은 모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목표로 한다. 세 가지 모두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를 전한다.


감정은 통제할 수 없는 적이 아니라,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다.
감정은 곧 지나가고, 진짜 는 그 감정을 알아차리는 관찰자에 가깝다.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기술은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감정에 끌려다니는 삶에서 벗어나, 감정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삶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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