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인생에서 한 번쯤 던진다. 그러나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지만, 불교는 오히려 고정된 자아란 없다고 본다. 철학과 불교, 심리학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탐구해 왔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핵심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착각이 오히려 진정한 이해를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는 서양 철학의 출발점인 데카르트의 자아론,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 그리고 실제로 독자가 활용할 수 있는 정체성 탐색 실습 방법을 연결하여 스스로를 성찰하는 여정을 안내한다.
1. 데카르트: 의심할 수 없기에 존재하는 나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로 근대 철학의 토대를 세웠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어도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말은 곧 “생각하는 자아야말로 존재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 관점은 우리가 누구인지 파악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직업이나 역할이 아닌 생각의 흐름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나는 디자이너다” 혹은 “나는 부모다”와 같은 정체성은 외부 조건에 의존한다. 데카르트식 자아는 그 조건들을 걷어내고 ‘의식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추적한다.
2. 불교의 무아(無我): 고정된 나란 없다
반면, 불교는 데카르트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를 무아(無我)라 한다. 인간은 육체, 감정, 의식, 기억, 의지 등 여러 요소의 결합체일 뿐, 그중 어느 것도 ‘영원한 나’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느끼는 감정과 내일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과거에 중요하다고 여긴 가치도 현재에는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아는 끊임없이 변한다. 불교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아를 고정하려는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고 본다. 따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나는 정말 나를 고정된 것으로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3. ‘정체성’이라는 허상의 위험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현대인의 정체성은 외부 기대와 사회적 역할에 의해 구성된다고 말한다. 즉, 타인의 시선과 역할에 의해 자기를 정의하게 되는 구조다. 회사에서는 성실한 직원, 집에서는 자상한 부모, SNS에서는 밝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쓴다. 문제는 이 정체성들이 종종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충돌 앞에서 많은 이들은 혼란과 불안, 자괴감을 느낀다.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수 있다. 이 해석이 너무 굳어지면 오히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유연한 탐색을 막는다.
4. 자기 탐색 실습: 진짜 나에게 접근하기
철학과 불교는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질문을 살아내라”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기 탐색 실습을 소개한다.
① '나는 누구인가'를 10번 반복 질문하기
종이에 ‘나는 누구인가?’를 쓰고, 아래에 10개의 답을 계속 적어본다. 처음엔 “나는 마케터다”, “나는 엄마이다” 같은 역할이 나올 수 있지만, 점점 “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나는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다” 같은 내면의 진술이 튀어나온다. 이 지점부터 자아 탐색이 시작된다.
② ‘내가 절대 놓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쓰기
내가 ‘이건 나야’라고 생각하는 요소를 하나씩 떠올려본다. 외모, 성격, 신념, 경력 등 어떤 것이든 좋다. 그런 다음, 그것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상상해 본다. 그 감정의 반응이 강할수록 그 대상에 자아가 동일시돼 있는 상태다.
③ 타인의 시선을 지운 상태에서의 나 탐색하기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타인의 시선을 제거하면 진짜 욕망이 드러난다. 거기에서 의무가 아닌 자발성의 나를 찾을 수 있다.
5. 장자의 나비와 ‘경계 없는 나’
장자는 꿈에서 자신이 나비가 되는 경험을 이야기하며, 자아와 세계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나는 꿈속에서 나비였는가, 나비가 꿈속에서 나였는가?”이 물음은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흐름임을 보여준다.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을 통합해 해석하는 구성체로 본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자아를 정의하려 애쓰기보다, 자아를 자유롭게 흐르게 두는 용기다.
6. 자아 혼란은 성장의 전조다
자기 탐색을 시작하면 누구나 혼란에 빠진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굳게 믿어왔던 이미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혼란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자기 이해로 가는 문 앞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통증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자아가 자기를 인식하지 못할 때 생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혼란은 절망이 아니라, 의식이 깨어나는 신호다. 이 과정을 피하려 하지 말고, 혼란 속에서 내가 진짜로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 직면해야 한다. 그 안에서 ‘진짜 나’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살아내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단번에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갱신되고 수정되는 질문이다. 철학은 그 질문을 의식의 중심으로 데려오라고 말하고, 불교는 그 질문 자체를 놓으라고 조언한다. 심리학은 그 질문에 대한 반응을 관찰하라고 권한다. 결국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하나의 정의로 고정하기보다, 매일의 경험 속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가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야말로, 진짜 탐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물음 안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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