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스스로를 합리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택할 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불교는 인간의 대부분의 선택이 '집착'에 의해 왜곡된 결과라고 말한다. 현대 심리학도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집착, 과거의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집착,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사고 구조에 미세한 왜곡을 만들어낸다. 이 글에서는 불교의 ‘집착(執着)’ 개념, 철학적 자유의지 논의, 그리고 현대 심리학의 인지 편향 이론을 통해 왜 우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왜곡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1 | 집착은 선택 이전에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집착을 ‘탐(貪)’이라 하며, 고통의 뿌리로 본다. 이 집착은 선택의 순간에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이 발생하기 전부터 우리의 인식을 기울이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강할수록 우리는 ‘거절당하지 않을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즉,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집착이 만들어낸 방향으로만 길을 좁혀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착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갈망만이 아니다. 관계, 감정, 이미지, 신념에 대한 정체성과 동일시된 집착까지 포함된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이걸 원해서 선택했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걸 놓치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라는 심리적 불안을 따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우리는 선택이 아닌 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선택의 방향은 이미 마음속의 집착이 설계한 길로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2 | 철학은 말한다: 진짜 선택은 가능한가?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절대적인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오히려 자유는 환상에 가깝다
고 본다. 그는 인간이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았다. 이런 철학적 통찰은 불교의 ‘무아(無我)’ 개념과도 통한다. 불교에서는 고정된 자아가 없기 때문에,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선택이 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집착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자유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3 | 노장사상이 말하는 무위(無爲)와 내려놓음
노자와 장자는 이와 반대되는 삶의 태도를 ‘무위’(無爲)와 ‘자연’(自然)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지족자부(知足者富)"라고 말한다. 만족을 아는 자가 진정한 부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집착을 내려놓는 데서 오는 풍요를 말한다. 장자는 ‘허정(虛靜)’의 상태, 즉 마음이 비어있고 고요한 상태에서 비로소 사물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도 연결되며, 결국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내가 붙잡는 것들이 나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선택은 행위의 결과이기 이전에 존재의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철학과 도가는 일맥상통한다.
4 | 심리학이 말하는 인지 왜곡과 집착의 관계
인지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 ‘손실 회피’, ‘자기 중심성’ 등의 개념을 통해 인간의 선택 왜곡 현상을 설명한다. 이 편향들은 대부분 ‘집착’이라는 정서적 동기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 투자한 시간이 아깝다고 느끼는 마음은 심리학에서 ‘매몰 비용 오류’라고 부르며, 이는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을 유발하며, 이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또한 ‘확증 편향’은 이미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강화시키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성향이다. 이 또한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심리적 집착의 결과다. 결국, 현대 심리학은 불교가 말한 집착이 어떻게 판단력을 흐리는지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주는 도구가 된다.
‘완벽한 결혼’을 집착한 사람의 선택 혜진(가명)은 33세의 마케터로, 누구보다도 ‘안정된 삶’을 원했다. 부모님처럼 헌신적이고 다정한 배우자와 결혼해서 조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그녀는 이상형에 부합하는 남성을 만나자, 그 사람이 가끔 냉소적이고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점에도 눈을 감았다.주변 사람들은 걱정했지만 혜진은 “사람은 다 장단점이 있어”라고 말하며 결혼을 강행했다. 그러나 결혼 1년 만에 관계는 급속도로 무너졌다.그녀는 뒤늦게 자신이 선택한 것이 사랑이 아니라 ‘안정된 삶’이라는 환상에 대한 집착 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집착이 현실을 왜곡시켰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을 정당화하게 만들었던 것이다.이처럼 집착은 현실을 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비이성적 결정을 설득력 있는 선택처럼 포장하는 기능을 한다. |
5 | 집착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선택은 다시 시작된다
불교에서는 수행의 핵심이 ‘알아차림(念)’이라고 강조한다. 감정, 욕망, 기대를 지켜보는 내면의 시선을 기르면서, 우리는 비로소 집착이 작동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억제도, 강박적 절제도 아니다. 단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흐르게 두는 태도다. 노자 또한 "무위로서 모든 것을 이룬다(無爲而無不爲)"고 했듯이, 억지로 컨트롤하지 않는 존재 상태가 진짜 지혜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우리는 억누르는 대신 내려놓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집착을 놓는다는 것은 욕망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욕망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집착이라는 배경 화면을 제거해야 진짜로 자유롭게 클릭할 수 있는 선택 버튼을 발견하게 된다.
선택의 진짜 자유는 집착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매일 수십 번의 선택을 하며 산다. 그리고 그중 많은 선택이 의도치 않게 후회로 이어진다. 그 이유는 우리 안의 무의식적 집착이 선택의 방향을 몰래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착은 감정의 이름을 바꾸며 위장한다. 사랑, 책임감, 목표, 효율성이라는 긍정적인 언어로 스며들기 때문에 더 쉽게 간과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적 수행과 철학적 성찰, 심리학적 이해를 함께 묶는 접근이 필요하다. 선택은 자유롭게 하되, 그 자유가 진짜인지 묻는 용기, 그것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철학이다.
↪ 관련 글 보기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연민(self-compassion)과 미움 극복 (0) | 2025.06.04 |
---|---|
행복에 집착할수록 불행해지는 이유 (0) | 2025.06.03 |
나는 누구인가 (2) - 자아 탐구 7일 챌린지 (0) | 2025.06.02 |
나는 누구인가 (1) (0) | 2025.06.01 |
타인을 미워하는 나를 이해하는 법 (0) | 2025.05.30 |
욕망은 죄가 아니다 (0) | 2025.05.30 |
감정은 흘러가는 것 (0) | 2025.05.29 |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기 (0) | 2025.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