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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친구의 실수, 용서해야 할까?

친구와의 관계는 믿음과 실수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우리는 쉽게 용서해야 할까, 아니면 단호하게 거리를 둬야 할까? 단순한 감정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용서’의 윤리는 전혀 다른 접근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레비나스, 니체 등 다양한 철학자의 사유를 바탕으로, 용서란 무엇이며, 언제 용서하고 언제 단절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탐색한다.

 

 

<인간관계에서 ‘실수’란 무엇인가>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실수'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행위와, 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도대체 어디까지를 '실수'라고 봐야 하고, 언제 그 실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 판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철학은 그 기준을 논리적, 윤리적으로 정리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관계 유지의 균형>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덕목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에 있다고 말했다. 지나친 관용은 나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지나친 단절은 관계를 너무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따르면, 용서도 중용이 필요하다. "모든 걸 용서하라"는 것도,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말라"는 것도 극단적 윤리로 분류되며, 모두 인간관계를 파괴한다.

 

즉, 관계의 윤리에서는 감정보다 균형 잡힌 판단이 우선되어야 한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 상대를 이해할 책임>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他者)’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도덕은 타인의 얼굴 앞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기 이전에, 그 존재 자체가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친구가 실수했을 때, 레비나스 윤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의 배경과 맥락, 그 사람의 ‘존재’를 성실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왜 그런 실수를 했는가?"

 "그 실수는 반복되는 패턴인가, 일시적인 흔들림인가?"

 "그의 존재는 지금도 나에게 의미 있는가?"

 

→ 이 질문을 던진 후, 진정한 윤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용서와 자기 존중의 경계: 나를 위한 용서인가, 타인을 위한 면죄부인가?>

종종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조건적인 용서를 선택한다. 하지만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런 용서는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어야 한다. 정당하지 않은 반복적인 실수를 계속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를 위한 선행이 아니라 스스로의 윤리를 훼손하는 일이다. 진정한 용서는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상대와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행위여야 한다.

 

 

<니체: 무조건적인 용서는 약자의 윤리인가?>

프리드리히 니체는 인간관계에서의 무조건적 관용을 '노예의 도덕'이라 비판했다. 그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의 태도"라고 주장했다.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한 윤리는 타인의 실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에 따라 대응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존중한다면, 반복되는 실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거절과 단절도 윤리적 선택이 된다.

 

니체의 철학은 ‘용서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

 

 

<실생활 사례로 본 철학적 판단>

1. 거짓말을 반복하는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 씨는 오랜 친구 B 씨에게 여러 번 거짓말을 들었다. B 씨는 늘 “정말 미안해. 다음엔 안 그럴게”라고 말했지만 같은 일이 반복됐다.


  아리스토텔레스: 반복되는 실수는 중용을 넘어선다. 관계의 해로움 유발.

  레비나스: 상대의 진정성은 존중하지만, 반복은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연결됨.

  니체: 타인의 실수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거절’은 당당한 윤리다.

 

→ 결론: 관계를 끊는 것이 윤리적 판단일 수 있다.

친구의 실수, 용서해야 할까?

 

2. 위기의 순간, 친구가 등을 돌렸다면?

C 씨는 힘든 시기에 도움을 청했지만 친구 D 씨는 이를 외면했다. 몇 달 후, D 씨는 다시 연락을 하며 사과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실수할 수 있다. 단절은 과할 수 있음.

  레비나스: 그가 왜 외면했는지, 그 얼굴을 다시 마주할 준비가 되었다면 윤리적 관계 회복 가능.

  니체: 반복이 아니라면, 나의 인간됨을 위한 수용도 가능하다.

 

→ 결론: 용서는 선택지일 수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존중한 다음에만.

 

 

<용서의 철학: 실천을 위한 질문 3가지>

그 사람의 실수는 반복되는가, 아니면 일시적인가?
     → 중용의 관점에서 판단

 

그 사람의 실수 이전에 나는 그 존재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있었는가?
     → 타자 윤리에서의 출발점

 

이 선택이 나의 가치와 자존을 지키는 방향인가?
     → 니체 철학의 핵심 질문

 

 

 

▶ 결론: ‘용서’는 감정이 아니라 철학으로 결정하는 선택

용서는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건 때때로 자기희생일 수도 있고, 때로는 책임 회피일 수도 있다. 진정한 용서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 위에서만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덕으로,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로,

 니체는 ‘주체적 인간의 윤리’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기준을 제시한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용서해야 할까 말까?"가 아니라, “이 용서가 
윤리적인가, 그리고 나의 가치를 지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것이 진짜 철학이 말하는 인간관계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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